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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C 논단

시스템 반도체를 위한 Agile 설계 방법론

박 근 우 상무 | SK 하이닉스 NAND 설계그룹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이 확고한 비중과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다양성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달리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는 CPU와 GPU 코어로 대변되는 시스템 반도체의 패러다임으로, Intel이나 ARM, nVidia와 같은 회사들이 핵심 IP와 관련된 생태계를 구축하여 굳건하게 지키고 있어 신규 기업이 기존 시장을 잠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NRE(non-recurring engineering) 비용으로 인한 팹리스 스타트업의 높아진 진입 장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집적도가 높아짐에 따라 큰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나 시간이 투입되어 개발에 필요한 NRE 또한 상승하게 되었고 이는 16/14nm 기준으로 제조 비용을 제외하고도 평균 3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작은 스타트업에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고, 점점 팹리스 스타트업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IoT 등 데이터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CPU나 GPU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어플리케이션에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에 적합한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테슬라와 같이 반도체 개발과 관련이 없는 회사들에서도 조직을 신설하여 자체적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고, 반도체 스타트업들도 속속 생겨나 대기업에 M&A되는 사례도 자주 들리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IoT 등은 아직 성숙한 기술이 아니고 주도적인 하드웨어 아키텍쳐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는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NRE 비용을 줄이면서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을까? 제조 NRE 비용은 IDEC의 MPW와 같은 방법을 활용하여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설계 NRE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따온 Agile 방법론이다. 반도체 개발에도 Agile 방법론을 사용하자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본문에서는 최근의 동향을 소개하도록 한다.

[그림 1] 시스템 반도체 개발용 Waterfall Model과 Agile Model

Agile 설계 방법론은 문자 그대로 ‘민첩하게’ Specification에서부터 Validation까지의 하나의 개발 주기를 수행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며 제품을 개발해 나간다. 이는 하나의 단계가 완전히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통적인 Waterfall model과는 차별화되는 것으로, 하나의 기능에 대해 모든 단계를 거친 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가며 개발 주기를 반복하므로 고객의 요구조건이나 시스템의 변경사항들을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의 실패 확률도 줄어들게 되고 Verification과 Validation에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도 줄어들게 되므로 이로 인한 비용 감소 효과도 볼 수 있다. Agile 설계 방법론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원칙에 대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용은 꽤 자유롭다.

UC 버클리대의 ADEPT Lab 등에서는 각 단계별로 Agile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RISC-V라는 오픈 ISA(Instruction Set Architecture) 기반의 CPU 코어 IP를 사용하여 라이센스 비용과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줄였고, Chisel이라는 객체지향 하드웨어 언어를 개발해 시스템 레벨에서 RTL 코드를 자동생성되도록 하여 구현/검증에 소모되는 시간을 단축하였다. 또한 Physical Design 과정을 자동화하는 툴을 개발하고, 아마존 클라우드 FPGA를 활용하여 프로토타입을 구성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이러한 툴들은 대부분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어 학계의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SiFive와 같은 회사들이 이를 활용하여 시스템 반도체 칩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 Agile 설계 방법론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동참하는 연구자나 기업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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